9화. 루나의 편지 – 너의 손을 잡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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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날 친구는… 아주 품위 있는 아이야.”

마루가 하린을 데리고 간 곳은 강아지별에서 가장 조용한 장소였다. 작은 도서관 같은 건물이 있었고, 그 앞 벤치에 한 강아지가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검은색 털의 래브라도 리트리버였다. 자세가 반듯했고, 눈빛이 깊고 차분했다.

“루나야.”

마루가 부르자 루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 정확하게 두 사람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왔다.

“마루구나. 그리고… 하린씨죠?”

“어, 어떻게 알았어요?”

루나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발소리요.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어요. 그리고 마루가 하린씨를 데려올 거라고 말했었죠.”

“루나는 여기서도 여전히 귀가 밝아.”

마루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직업병인가 봐요. 안내견으로 8년을 일했으니까요.”

루나가 하린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린이 그 손을 잡자, 루나가 반갑게 악수했다.

“앉으세요. 제가 차를 준비해왔어요.”

루나는 미리 준비해둔 차를 따라주었다. 모든 동작이 우아하고 정확했다.

“루나, 정말 멋지다. 여기서도 모든 걸 혼자 하는구나.”

“습관이에요. 선생님이 항상 말씀하셨죠. ‘루나야, 넌 내 눈이자 손이고, 내 전부란다’ 라고요.”

루나의 목소리에 그리움이 묻어났다.

“선생님이 루나의 주인이셨구나?”

“주인이라기보다는… 파트너였어요. 저는 선생님의 안내견이었고, 선생님은 제 인생의 전부였죠.”

루나가 찻잔을 들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선생님은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셨어요. 하지만 그분은 누구보다 강한 분이셨죠. 대학 교수셨고,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셨어요.”

“와, 대단하시네요.”

“네. 저는 선생님이 52살 때 만났어요. 안내견 학교를 졸업하고 선생님께 배정됐죠.”

루나의 눈에 추억이 가득했다.

“처음 만난 날, 선생님이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어요. ‘루나야, 우리 앞으로 좋은 파트너가 되자. 너는 내 눈이 되어주고, 나는 네 목소리가 되어줄게’라고요.”

“정말 아름다운 약속이네요.”

“그 약속을 우리는 8년 동안 지켰어요. 매일 아침 학교까지 함께 출근하고, 강의실을 오가고, 저녁에는 공원을 산책했어요.”

루나가 잠시 말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선생님은 제게 세상을 보는 법을 가르쳐주셨어요. ‘루나야, 저기 꽃 냄새 나지? 봄이 왔나 봐’ 라든가, ‘루나야, 아이들 웃음소리 들려? 행복한 소리야’ 라고 하시면서요.”

“선생님이 볼 수 없는데도요?”

“네. 선생님은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마음으로는 모든 걸 보셨어요. 저보다 더 많은 걸 보셨죠.”

하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예요?”

루나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3년 전이었어요. 선생님이 갑자기 쓰러지셨어요. 병원에서는 뇌종양이라고 했어요.”

“루나야…”

“처음에는 치료를 받으셨어요. 하지만 점점 안 좋아지셨죠. 마지막 1년은 거의 병원에만 계셨어요.”

루나가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저는 매일 병원에 갔어요. 안내견은 원칙적으로 병실에 들어갈 수 없지만, 병원에서 특별히 허락해주셨어요.”

“선생님이 루나를 원하셨구나.”

“네. 선생님은 제 발소리만 들어도 아셨어요. ‘루나 왔구나. 오늘도 고마워’라고 하시면서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셨어요.”

루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마지막 날… 선생님이 정말 약해지셨어요. 손을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하셨죠. 하지만 제 발소리를 들으시고는 손을 들어 올리려고 하셨어요.”

“손을…”

“네. 선생님은 항상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셨거든요. 마지막에도 그러고 싶으셨던 거예요. 하지만… 손이 잘 올라가지 않으셨어요.”

루나가 고개를 숙였다.

“저는… 그때 선생님 손을 잡아드렸어야 했어요. 제가 선생님 손을 제 머리에 올려드렸어야 했어요.”

“루나…”

“하지만 저는 안내견이었어요. 규칙을 지켜야 했죠. 명령 없이는 움직이면 안 됐어요. 그래서 저는… 그냥 가만히 있었어요.”

루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선생님은 결국 손을 내리셨어요. 그리고 작게 미소 지으시며 말씀하셨어요. ‘루나야, 고마웠어. 너 덕분에 행복했어’라고요.”

“그게 마지막 말씀이셨구나.”

“네… 선생님은 그날 밤에 평화롭게 돌아가셨어요. 저는 그 순간에도 선생님 침대 옆에 있었어요.”

하린이 루나의 손을 잡았다.

“루나야, 넌 아무 잘못도 안 했어.”

“하지만… 저는 선생님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드리지 못했어요. 선생님이 제 머리를 쓰다듬고 싶어하셨는데…”

“루나야.” 마루가 말했다. “선생님은 분명 이해하셨을 거야. 넌 완벽한 안내견이었으니까.”

루나가 고개를 들었다.

“하린씨… 부탁이 있어요.”

“뭐든 말해봐.”

“선생님의 가족 분들을 찾아주세요. 그리고 이 편지를 유골함 옆에 놓아 주실 수 있을지 물어봐주세요.”

루나가 가방에서 편지를 꺼냈다.

“또 말해주세요. ‘루나가 선생님 손을 잡고 싶었다’고요. ‘마지막 순간에 선생님을 만지고 싶었다’고요.”

“그리고?”

“‘하지만 규칙 때문에 못 했던 게 아니라, 선생님이 편안히 가시길 바랐기 때문이다’라고 전해주세요.”

루나가 미소 지었다.

“사실… 저는 그날 선생님 손을 잡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선생님이 힘들어하시는 걸 보고, 그냥 편안히 계시길 바랐어요. 제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애쓰시지 않기를 바랐어요.”

“루나…”

“그게 제 마지막 선물이었어요. 선생님께 편안함을 드리는 것.”

하린이 루나를 꼭 안아주었다.

“루나야, 넌 정말 훌륭한 안내견이야. 선생님이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셨을지 몰라.”

“정말… 그럴까요?”

“응, 분명히 그래. 그리고 선생님은 지금도 루나를 자랑스러워하고 계실 거야.”

루나가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8년간 지켜온 품위와 사랑이 그 미소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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